낯선 곳에서/수원 2004
[수원] 오래된 시간에 숨 고르며,
maktub
2004. 6. 8. 01:43
시간을 거쳐온 것들에는 편안함이 배어있다. 강물에 구슬려 둥근 돌처럼, 시간을 구슬려진 것들이 우리 삶의 틈새 곳곳에 끼여있다. 이제 갓 도색 된 핸드폰 새끈한 표면처럼 새련된 맛도 그에 따른 스포트라이트도 없지만, 익숙함과 낡음의 편안함이 있다.

수원은, 방을 정리하다 장롱 바닥에서 발견한 어린 시절의 연필같이 흘려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현재분사형 도시이다. 시내를 감싸고 있는 화성은 원형으로 시내를 빙 둘러싸고 있으며, 그 성안에 사람 사는 집과 관청이 있고, 도로에 버스와 사람이 나다니고, 곳곳에 여전한 성문이 그 성벽을 잇는다. 토막 나고 흔적 없는 한성과 덩그러니 멀뚱한 동대문/남대문이 아니다.


화성을 천천히 걸으며 옛 시간을 거닌다. 여전히 깃발은 바다고기처럼 펄쩍이지만, <令> 같은 글자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간혹 성곽의 요소에 요란한 색의 관복을 입고 고성에 슬렁슬렁 대는 사람들이 있다. 이러한 어색함 모습은 마치 흑백의 시대에 덜렁 컬러를 입은 듯 어색하고, 한지에 먹물 번지듯 천천히 익숙해진다.

길을 조금 벗어나면 중앙시장에 갈 수 있다. 그 이름처럼 예전에는 최고의 상권이었을 중앙시장 건물은 이제는 낡고, 그저 몇몇 소매점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는 듯 했다. 이어진 재래시장은 우리내 시장이었다. 3000원짜리 청바지가 있었고, 미꾸라지가 펄펄 댔고, 아주머니를 강냉이를 튀기고 있었고, 그 옆에서 아저씨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 전 고향에서 찾아봤던 오일장보다도 더 유년의 기억으로 남은 시장과 흡사한 모습이다. 시장의 태양은 강렬히 비추어, 햇살과 그늘의 대비가 선명했고, 햇살을 피해 사람들은 유령처럼 부유하며 거닐었고, 시계의 초침은 천천히 흘렀다.


길을 가며 볼떼기가 붉은 아이들을 만난다. 붉은 볼떼기는 아이들의 상징이다. 무엇인가 어설프고 촌스럽지만, 귀엽고 생기 넘친다. 성곽 아래서 사주를 보는 할아버지는 어릴 적 교과서의 독 짓는 늙은이 같다. 이내 뒤적뒤적이며 노인이 여인의 지나온 시절과 미래를 짐작하는 새, 나는 오래 전 덩그러니 나무괴짝을 놓고 시작했을 노인의 시간을 본다.

이내 울린 핸드폰을 받고 발걸음을 재촉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횡단보도에 주저 앉은 노인과 손수레를 이용해 무거운 일상을 나르는 노파의 모습은 힘겨워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