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맛을 찾아서 (2) ::: 냉면을 찾아서

maktub 2005. 8. 6. 15:52

2001년 여름 어느 금요일,
주당 둘과 함께 주먹고기로 시작한 술판은
소주에서 시작해 맥주 양주의 코스를 거쳐
결국 나는 뻗었다 -.-;;;
예매해 두었던 부천 영화제도 가지 못했다,
지갑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
점심이 한 참 지나 멀 먹을까 하다 인터넷에서 보았던 명동입구 냉면집으로 갔다.
초라한 분위기,
머리에 하얀 할아버지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길건너 명동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 분위기는......
일단 배고프고 힘이 없으니...
따스한 육수가 물대신 나왔고,
곧이어 냉면이 나왔다.
목마른 나는 단순에 육수를 들이켰고,
그 순간, 내 깨질듯 술취에 시달리던 내 머리는
얼얼하게 꽝하고 얼어 버렸고,
단숨에 나는 술에서 깨어났다.
이것은 이제까지 먹어본 냉면이 아니었다,
물어보니 육수만이 있는게 아니라 육수랑 동치미를 섞었단다.
덕분에 육수가 시원하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면은 어떤가,
뻑뻑한 듯 하지만, 나름대로 씹는 맛이 있고,
그러면서도 심심한 이상한(?) 면이었다.

참 이상했다, 내가 먹어본 냉면은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원래 냉면이 이러한 맛인가?
***
나는 닭갈비를 먹은지가 20년이 넘었다.
춘천 옆 동네 살다보니 소시적부터 연탄불로 지피던 닭갈비를 먹어왔다.
그 시절의 닭갈비는 고구마와 동치미 상추로 싸먹었는데,
어느 순간 생긴 서울의 닭갈비는 이상했다.
비슷한 듯 하지만, 그 양념의 맛이 상투적이고 달달하다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음식이 본고장에 있을 때와
다른 고장으로 퍼질 때 차이가 나고,
더우기 그것이 프랜차이즈라면 어쩔 수 없다 -.-;;;
***
이렇게 단번에 술이 깬 후로 나는 냉면 신봉자가 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역시 북한에서 나려온 사람이 한다는 집을 찾았다.
당시 자취방에서 걸어서 5분도 안 걸릴 거리였고,
역시 머리 희긋한 분들 잔뜩인...
이 집은 육수는 걍걍인데, 면이 <면>이었다.
젖가락을 집어 면을 끌어 올려 입안에 넣으면
일단 그 뻣뻣함이 느껴지고, 숭덩 짤리 씹다보면
부드러운 기운이 감돌고, 한 입 목구멍으로 넘기고 나면
아쉬움과 안타까움이남는 면이었다.

이 면의 느낌은 언젠가 춘천에서 먹은 막국수의 면과 견줄만 했다.
친구와 소양강을 가는 버스에서,
앞 자리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막국수 집을 추천해 달라는 말에,
아주머니는 우리를 윗샘밭에서 내리게 해서 반강제로 어느 허름한 집에 데려갔다.
반신반의 했지만, 아주머니가 그 집 아저씨에게 우릴 소개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헛~! 꽤 넓은 식당에 사람들이 빼곡했다.
일단 막국소를 시키자, 금새 국수가 나왔는데,
부들부들한 면발이 입에 들어가자 뚝뚝 끈기며 부드럽게 녹는데,
우리는 땅을 치며 이구동성 감탄했다.
그 친구는 <짜장늑대>라는 놈이었고,
면을 좋아하는 우리는 중원에서 면식수행 했지만,
변방의 고수에게 이렇게 무너질 줄이야...
***
그 여름이 갈 즈음 공덕동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놀러갔다가,
우리 동네 냉면집 이야기를 하였더니,
코웃음을 치더니 자기동네 냉면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걸어가 골목으로 들어가 허름하니 크지도 않은 집으로 들어갔다.
일단 간판을 찾기 힘들었고 허름하니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으로 들어가 우리는 일단 수육을 먹었다.
ㅎㅎㅎ, 수육으로 배를 채우면 어찌 냉면이 맛있을까!
이제 언제나처럼 물냉면을 시켰고,
언제나처럼 육수를 마시며 면을 홀짝 들이켰다.
아~ 나는 탄식하며, 이제 더 이상의 냉면이 없을을 알게 되었다.
완벽한 육수와 국수와 조화,
동치미를 섞지 않고 육수 자체의 맛이 뛰어나고,
면도 쫄깃하니 씹?수록 씹는 맛이 나지 않는가!
******
그 후 이런저런 냉면집과 고기집에서 냉면을 먹었지만,
그것들은 마트에서 파는 냉면과 크게 다름이 없었다.
특히 고기집 냉면은 잘 시켜야지 잘못하면 낭패.
고기가 주이다보니 아무래도 냉면만을 파는 집보다 못하기 일 쑤이다.
**냉면 같은 냉면 전문점임을 내세운 집도 막상 먹으러 가면
면이 뭉치거나 육수가 너무 시는등 엉터리집도 꽤 많이 보았다.
역시 닭갈비가 그랬듯이,
북한의 냉면이 남한으로 내려와서 이상해지는 것 같다.
***

이사와 이직으로 자주 가던 면집과 멀어져,
여름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차에
냐옹이와 씨젠인가 하는 국수집에 가게 되었다.
젊은 분위기 다양한 메뉴, 추천대로 면을 시켰다.
오랜만에 새로운 면을 맛본다는 야릇한 기대도 잠시
특이한 모양의 면은 면 자체가 가져야 하는 씹는 맛도 없었고,
육수나 소스에 깊은 맛 없이 스쳐지나갔다.

새로운 국수에 대한 실망할 즈음
우연히 메밀국수를 직접 뽑는다는 집을 알게 되었다.
지난 주 덥다고 치얼대는 냐옹이를 데리고 가니,
변두리에 마치 중국집 처럼 나무 인테리어에 실망...
메밀소바를 시키자 커다란 그릇에 국수가 나왔다.
일단 한번 헤져어 여러 양념을 섞고
- 사진은 한번 휘젖은 상태이다 -
육수를 들이켰다,


오 이런~ 이 육수는 여러 양념이 과하게 혼함되어 되어 버려
자체의 단아한 맛이 위협받고 있지 않은가.
이런 불안한 마음으로,
면을 한 젖가락 뽑아 쉬릭 하고 입에 넣고,
눈을 감으며 한 입 한 입 면의 맛을 음미했다.

아 역시 이 맛이야,
면이란 무릇 제대로 뽑는 집에서
갓 뽑은 면을 먹어야 한다.
쫄깃하며 부르럽고 냉한 것이
여름음식으로 여느 냉면과 겨루어 봄직한 맛이다.

*********
글을 적으면서 한 집 한 집 갔던 그 맛이 떠올라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쓰고 있다 -.-;;;

내일은 공덕동에서 일하는 친구가 놀러온다.
그 놈과 지난 주 맛대맛에 나왔던 고덕동 칡냉면을 한 번 먹어봐야쥐~
유명하다는 유천 칡냉면을 먹고 다시는 안 먹으리라 생각했지만,
맛대맛에 메인으로 나온 집이니 설마~
내일이 기대된다~!

ps) 저 위에 언급된 집들에 친구들과 가보면 맛없다는 친구들도 꽤 있다.
얼마전 평양의 냉면이 조미료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밍밍하다는데...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