雨中마라톤

2003 ~ 2006 2004. 5. 12. 00:41
일요일, 신청하고도 잊었던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일어나 아침, 비는 주르르 내리고, 가기 싫었다.
억지도 가서는 배번을 달고, 신발에 기록 측정용 칩을 달았지만,
머리에는 어떻게 하면 빠져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프를 신청하고는, 10km만 뛰기로 했다.

..하지만, 뛰면서도, 어찌하면 빠져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화장실 가는 척 하면서 패스트 푸드점으로?
지하철 역으로 확 들어갈까?...
모른척 10km를 뛰었다. 하프용 배번을 달고 10km를 뛰는 것은 부끄러운 짓...
그렇게 달리면서도 - 사실 박수 받아야 옮지만서두 -
빨리갈 수 없었다, 혹시나 나를 정말 하프를 다 뛴 것으로 알면 어떻하냐 하는 생각에...


어찌하여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이렇게 비겁하기 짝이 없게 뛰고 있단 말인가?
당연히 뛰어야할 것을 이렇게 뛰고 있는 것은 정녕 살아간다는 것일까?
머리 속에는 늘 남에게 들이댈 구실을 만들고 있다.
항상 이렇게 살아온 것은 아닐까?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받아들이고, 더 나은 나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고,
항상 이건 이래서 이래서 이 모양입니다라고 매번 말하며,
나를 설득하고, 스스로 믿고 사는 것은 아닐까?
무대뽀로 뛰어들고, 열정은 사라지고, 실패에 대한 핑계를 준비하고,,,
이제 정녕 나의 모습인가?

다시 뛰어야 한다.
길이 있기에 뛰어야 하고, 살아 있기에 달려야 한다.
더 빨리 뛰고 늦게 뛰고가 아니라,
가다가 몇 번 쉬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뛰고, 내 숨 차는데까지 뛰어야 한다.
결국 내 운명은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