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남 통신은 10개나 쓰면 많이 쓸 것 같았는데,
어느 덧 12개가 되었다.


배낭여행이 패키지 관광과 다른 것은,
남들이 보여주는 부분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부분을 본다는 것이다.

배낭여행을 하다보면 갈 곳은 많고, 시간과 돈은 없고...
결국 갈등을 하게 되는데... 여길 가야 하나 절 길...

하지만, 저것은 초보여행자의.
누군가의 인도여행책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매일 아침 식당 주인이
무얼보고 왔냐고 물어본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하루는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어디가서 <사람을 본다>라고 했더니,
주인이 자네 여행을 제대로 하네라고 했다나 머래나...





[골목은 보면 모랄까, 그곳까지 들어가보고 싶다]


10일간의 태국의 여행보다도, 5일간의 필리핀 여행이 휠씬
인상적이었던 것은 잘못 찾아간 길에서 보았던 <사람들>때문이다.
나스부그라는 휴향지를 손바닥만한 정보를 보고 찾아갔는데,
태국 <코 싸멧>의 열대 바다를 기대했던 나에게
더러운 해변과 넘실대는 검푸른 물은 실망이었다.

선착장을 찾아가던 나는 길을 헤메어,
그곳 사람들의 골목길을 죽 통과했던 적이 있다.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구멍가게에는 국민학교 책상만큼 물건이 있었고,
열린 아주 작은 방에는 사람들이,
일없는 남자들이 놀고 있었다.
마치 희망의 원색은 날아가고,
절망과 불행의 흑백만이 남아있는 것 같았던...


마치 흑백필름 같은 그곳을,
붉은 배낭과 어제산 파란 청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나를
모든 사람들이 처다보았다.
첨에는 마치 흑인소굴에 들어온 듯 겁이 났지만,
나의 생각이었을 뿐,
그 누구도 나에게 무엇하나 말하거나 손가락질 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외국인이 그것도 골목까지 왔으니,
신기해서 처다볼 뿐이었다.

한동안 저 기억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나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니...
같은 지구에서 같은 땅에서 태어나서,
무슨 죄가 있길래 그들은 저렇게 살고 있을까.
대체 윤회라는 것이 있는가?




[숙소 앞 방카오의 골목은 필리핀 보다는 휠씬 좋다.
그래서 그나마 사진찍기가 미안하지 않았다.]



며칠전 저녁, 할 일 없이 있다가 시장 구경을 가다가,
무심코 동네 골목에 들어가 보았다.
이제까지는 사람들이 오토바이 타는 모습만 보았는데,
그곳에 가니 오토바이를 자전거를 내린 사람들의 모습이 있었다.
낡은 아파트와 가난한 사람들,
그곳을 뛰노는 사람들, 한가한 노인들...

골목을 누비고, 시장에 가고, 길거리를 택시가 아닌 발로 걷고,,,
이렇게 해야 내가 이 동네에 와본 것 같다.
이 곳 번화가까지 가는 길이 머리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에서 하이퐁은 나의 몇 번째 고향이 될 것이다.
한동안 하이퐁에서 걷던 길을 기억할 것이고,
골목과 함께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 사람들이 못사는지 불행한지 행복한지 잘 모른다.
하지만, 웬지 미안해서 쉽사리 사진을 찍지는 못한다.
여기에 올리는 사진도 큰 맘 먹고 찍은 것이다.

(물론 대부분은 사진을 찍으면 좋아하고,
은근히 찍히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지만,
나의 생각인가... 그들은 자신의 저러한 모습을 보이기는 꺼리는 것 같기도 하고...
시장 같은 곳에서 셔터 몇 번 누르면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모두 나만 본다-.-;;;)





월남에서 쓰는 마지막 월남 통신은
이런 식의 끝맺음을 정말 싫어하지만
웃기게도 <희망>이라는 말로 끝내고 싶다.

대체 이곳에 무슨 희망이 있는지는 나도 모른다.
계속적인 산업발전이 이들에게 행복을 줄지 아닐지도 미지수다.
하지만, 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그 순수함과 미소를 잃지 않는다면,
베트남은 행복지수 1위의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으로 향하는 나는 사람들의 미소와 순수,
그리고 푸른 하늘과 뭉실뭉실 뭉개구름을 가지고 집으로 간다.

바이바이 하이퐁, 바이바이 베트남.
내가 또 언제 네게 올 수 있으리...
쌀국수 마인다꾸어여 안녕,
썬 플라워 수영장이여 안녕,

...사진과 월남 통신으로 널 기억하리,,,

베트남이라는 나라...
고등학교 시절이었던가 무슨 잡지에서
이 나라 학생들 사진에서 하얀 남방을 입고 있는 학생들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나라.
2001년 태국에 갈 때도, 베트남 가기에 비행기 티켓이 비싸서 방콕에 갔었는데.

<하고 싶은 일이면 언젠가는 하게 된다>라는 말을 쓰기 보다는,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 몇 가지는 나중에 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싶다.

베트남에서 한 달 가량의 프로젝트가 있다고 했을 때,
뛸 듯이 기뻤던 것은 열대지방에서 한 달 정도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광을 하는 것과 여행을 하는 것, 그곳에서 사는 것은 분명히 다르니까.


[저것이 노이바이 공항일까? 어디서 이걸 찍었을까?]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하노이의 초라한 공항이다.
규묘도 초라할 뿐더러, 비행기와 공항 사이를 오가는 버스중에는
우리나라에서 쓰던 시내버스도 있으니까.

노이바이 공항을 나와서 길을 나서자면,
시골스러운 풍경에 실망에 실망을 하게 된다.
시내에서도 차가운 물을 사먹기 힘들고,
제대로 된 공산품 하나 없으며,......
더워서 모 하나 제대로 하기도 힘들고...


하지만, 베트남에 있다보면 삶이 여유로와지고 풍족해진다.
일단 서울에서의 모든 일들은 잊혀지고,
베트남 사람들이 눈 앞의 일이 된다.
맑게 티없이 웃는 사람들, 어떤 문제에도 <흥분되지 (No problem)>을 외치며,
낮술을 마시고 잠을 자기도 하는 사람들.

슬슬 베트남에 대한 적응이 될 즈음이면,
베트남에서는 자연이 바로 옆에 있음을 알게 된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멀리 지평선을 볼 수 있고,
(이 나라는 산이 거의 없는 평지에 가깝다)
저끝에서 저끝까지 하늘을 볼 수 있다.



[하이퐁이라우.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 좋지않수?]


그 하늘은 내가 보았던 여느 하늘 보다도 낮다.
맑은 낮은 하늘에 항상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리고, 그 구름들이 (낮기 때문에) 빠르게 움직인다.
구름들,
맑은 하늘에 떠있는 구름들 -
이런 날은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덥지만,
이 맑은 하늘은 사람을 무작정 기분 좋게 만든다.

비행기 하나 떠다니지 않는 하늘,
정말 파란 빛깔의 하늘,
하늘 한번 처다볼 시간이 없는 서울과는 달리,
눈만뜨면 방에서 자다가도 눈에 띠는 하늘,
제발 흐리기를 그래서 시원하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쨍쨍한 하늘,,,




[하늘은 저렇게 파랗다, 매일매일... 덕분에 엄청 덥다-.-;;;]


언젠가 짜장늑대는 말을 했지, 프랑스의 하늘은 다르다고.
그래, 이제 그 말이 이해가 가. 베트남의 하늘도 달라,
낮고 푸른 것에 뭉실뭉실 솓는 것이,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해.

저것을 담아 그녀에게 가기에 내가 너무 작아.
저 속에 나를 묻을 수는 담을 수는 없는 건가...
내가 마치 어린 아이라면 펄쩍 뛰어서 저 속에 갈 수 있을텐데,
이미 나이들고 저속해져서,,,
저 하늘과 함께 사진조차 찍을 수 없다네.

파란 하늘, 파란 바다, 파란 새벽빛,,,
모든 것이 파랗게 아주 파랗게...
저 파란이 겹치는 저 먼 곳에는,
...**이 있는 건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 분위기가 변했다.
위에 것은 대낮에, 아래부분은 자정에 써서 그런가보다.)




[나짜이에 있는 커피숍 딜마, 아마도 체인점인 듯 아니면 상표나]


그 도시의 번화가를 안다는 것,
가는 길을 알고, 즐겨 가는 가게가 있다는 것은,
그 도시에 적응이 되었다는 것이고,
또한, 그 도시에 정이 든다는 이야긴데,,,

10년전에는 봄날의 종로를 좋아했다.
햇살 비치는 나른한 종로 거리를 수업을 빼먹고 걷곤했다.
서점에도 드르고, 음악도 듣고,

시애틀은 다운타운 보다도, University Avenue가 휠씬 기억이 강하다.
아르바이트를 하러가던 매주 주말 9시의 모습,
I-5라는 고속도로를 건너서,
50번가에 있던 Jack in the box라는 패스트 푸드점
거의 인적이 없는, 아직 해가 안떴지만 그런대로 밝은 거리.
50번가부터 40번가까지 있던 이런저런 가게들,
중고 LP를 많이 샀던 레코드샵들,
음악을 듣던 타워 레코드,
베트남 쌀국수집, 테리야키집,
BIG5라는 스포츠샵,
카페 북스토어 등등등......

태국의 카오산과 시암을 기억한다.
주말 새벽에 도착한 카오산은 젊음이 광란화된 거리였다.
거리에서 술마시며 흥에 취한 다국적 사람들,
세븐 일레븐 편의점 편의점 편의점과
수많은 guest house라는 값싼 숙소들.

그보다는 시암(Siam)이 더 좋다.
그 거리에 앉아서, 멍하니 뮤직비디오를 보며
사람들과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물론 내가 탈 버스는 없었지.
MBK 마분콩의 거대한 규모와
2시까지 술을 마시며 즐겼던 Hard Rock Cafe Bangkok.....

필리핀 마닐라의 내가 갔던 곳은 마티카인가? 잘 기억하니 않는다.
전철을 타고 내려서 TGI를 지나,
거대하고 굉장히 세련되었던 안마집을 지나있던
나의 숙소와 수많은 카페.
3일을 그곳에서 지내면서 그래도 떠날 때는 아쉬웠는데.




[퇴근 길의 나짜이. 사람들의 홍수]


그리고, 베트남 하이퐁이다.
이곳의 번화가인 디엔비엔푸보다도, 엥정보다도,,,
매일매일 보았던 걸었던 차를 타고 지나간 나짜이 (Lach Tray)가
나는 좋다.

이름이 주는 어감이 맘에 들었다.
주욱 늘어진 길거리에 필름 현상/인화소가 많았던 것도,
짜이 호텔의 스테이크도, 길거리 이발소도......
모두모두 맘에 들었고,
무엇보다 나짜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습이 좋다.


어제 저녁은 엥정이라는 곳부터 나짜이를 지나 숙소까지
40여분을 걸어왔다.
밤의 나짜이는 여느 베트남의 거리처럼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세우고
길거리에 종기종기 않아서 맥주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한다.
그들이 부러웠다.
시원한 밤거리의 그들이 부러웠다.
이제 일주일이면 나도 저럴 수 있으리라...

청소를 하는 청소부를 보았다.
아 이 나라의 거리도 청소를 하는구나.
왜 이 나라에는 이런 것이 없을거라는 생각을 했을까?
알게 모르게 우월감에 휩싸여 있음을 인정한다.




[밤의 나짜이. 변두리는 황량함도 있지만, 시내쪽은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이...]


나는 어떤 존재일까,
누구이기에 서른살의 나이에 베트남 하이퐁이라는 곳까지 와서
그 밤에 나짜이를 걸어가고 있는지.
나는 나짜이를 지나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내일은 나짜이를 지나 어디로 갈까?
길에서의 질문은 언제나 똑같다.
답도 언제나 똑같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
내가 어디서 왔는지도,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내일의 일은 커녕 10분 후의 일도 모른다는 것.

하지만, 나의 존재에는 여러가지 짐들이 지워진다.
<김완수>라는 이름 3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는,
한 가정의 아들이자, 한 여자를 사랑하는,
여러 친구가 있고,......


나도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언젠가는 이런 길에서 사라지겠지.
그럴 때 기분은 어떨까.
노인이 되어서 이제 죽음이라는 것이
내가 가진 유일한 통과의례가 되었을 때,
......
무엇이 오랜동안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종로든 나짜이든 시애틀이든,,,
내 나이가 스물이건 서른이건
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궁속을,
자신만만하고 잘 아는 척 하며 살아가고 있다.

진실일까?